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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고어 프로젝트] EP.5 달콤 쌉싸름(Bittersweet)한 돌로미티 101, 104트레킹

    Team Gore
    Team Gore

    새벽 산책으로 여는 돌로미티 트레킹

      알프스 돌로미티 살이 나흘째. 산장 생활은 단조로워서 좋다. 전기 공급이 끊기는 밤 10시. 2,300미터의 아우론조는 깊고 고요한 시간으로 들어간다. 하늘 반 별 반으로 채워진 밤하늘과 우람한 산군들이 마치 이탈리아 알피니(Alpini)처럼 아우론조의 밤을 지킨다. 그리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알람이 없어도 자연스레 잠에서 깬다.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포근하게 감기는 이불을 돌돌 말고 누운 채 고개만 살짝 치켜 올려 창 너머의 돌로미티 산군들을 만난다. 세상에 이보다 호사스러운 아침이 또 있을까.

    아우론조 산장 방에서 본 크리스탈로 일출

      잠이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말랑말랑한 상태로 새벽을 만끽한다. 하늘 색이 바뀌고 멀리 크리스탈로 산이 점점 발그레 물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이불을 걷어 내고 자켓과 카메라를 챙겨 나간다. 산장 1층은 오늘도 어김없이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로 가득하다. 매일 새벽 산장에서 굽는 크로와상 냄새는 세상 어떤 향기보다 달콤하다. 빵 냄새, 황금빛 일출, 포근한 운해. 이런 아침을 누리는 이 시간이야 말로 내가 돌로미티 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새벽 일출

    알프스의 한가로운 아침 풍경

      산장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 크리스탈로 산은 더 붉어졌고 트리치메를 마주하고 있는 돌로미티 최고의 침봉인 칸디니 디 미주리나 (Cadini di Misurina) 산군 또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치 설악산의 용아장성 같은 느낌이 드는 칸디니 디 미주리나 (Cadini di Misurina) 산군은 뾰족한 침봉 군락지다. 주차장 캠핑카 에서 밤을 보낸 캠퍼들, 산장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지금 막 아우론조에 도착한 사람들까지 새벽 산책을 나선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나도 빠질 수없지. 알프스 초원의 소들이 목에 달린 방울 소리를 내며 아침을 먹고 있는 곳을 피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돌로미티의 새벽을 즐긴다.

    (위), (아래) 돌로미티 산군 뒤로 화려한 일출이 시작됐다.

      돌로미티는 어디를 둘러봐도 거대한 암벽과 야생화 천국이다. 거대한 백운암 산군들, 뾰족한 침봉들, 수없이 많은 백운암들. 자칫 건조하고 차갑게 보일 수 있는 돌로미티는 곳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야생화가 함께 있어서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사람도, 자연도 상호 보완 관계다. 서로가 서로를 채워 주기도 하고 돋보이게도 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함께 하면 용기를 낼 수 있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힘을 받는다. 전쟁의 참혹함이 있던 이곳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변한 건 그 아픔을 어루만지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와중에 반가운 꽃, 아는(?) 꽃을 발견했다. 진짜 알프스 에델바이스다. 한국에서는 솜다리라고 불리고 설악산의 깊은 곳, 암벽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평화로운 돌로미티 초원과 야생화가 함께 하는 새벽

    새벽 이슬을 머금은 초롱꽃

    에델바이스
     

      일출 사진 몇 장 담고 조금 어슬렁거리다 돌아가려고 했는데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발은 자꾸만 더 높은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볼까? 저긴 뭐가 있을까? 크리스탈로가 점점 가까워진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끌려 도무지 발이 멈추지 않는다. 자꾸만 더 올라간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 뒤를 따라 오른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알프스 초원에 앉아 뒤를 돌아보니 아침 햇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우론조 산장과 트리치메의 조화가 입틀막이다. 나 정말 알프스에 있구나. 돌로미티에 있구나. 보이는 모든 풍경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살면서 이런 풍경은 처음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동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왜 돌로미티에 빠져들고 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이 곳에 있으면 알게 된다. 이런 곳에 어떻게 한 번만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루만 있을 수 있을까. 아무도, 누구도,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어떤 것에도 신경 쓰이지 않는 공간과 시간이다. 마음의 평화는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몇 시지?’ 급하게 나오느라 시계도 없고 휴대폰도 없다. 얼른 내려가야지 이러다 아침 식사에 늦겠다. 

    (위)(아래)아침 햇살을 품은 아우론조 산장과 트리치메 남벽

      오늘은 트레킹 데이다. 어제는 등반을 했고 오늘은 여유롭게(?) 늦잠도 자고 식당에서 제대로(?) 아침을 먹고101 트레일을 따라 로카텔리 산장으로 간 뒤 트리치메를 보며 맥주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1차 세계 대전 산악 전쟁 당시의 흔적이 있는 파테르노 산과 비아 페라타로 인기있는 이너 코플러를 둘러 본 뒤 내려와 트리치메 북벽을 끼고 걸어 산장으로 돌아 오는 계획을 잡았는데 음…변수 없는 계획이 어디 있던가.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벽 일찍 등반을 가느라 전날 미리 받아 둔 마른 빵과 식은 커피를 먹곤 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산장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아침 메뉴는 늘 똑같다. 크로와상, 과일, 요거트&뮤쥴리, 커피, 오렌지 주스. 같은 메뉴지만 칸디니 침봉, 크리스탈로 산군을 바라 보며 먹는 아침은 좁은 방 바닥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던 그 맛이 아니다. 오늘은 여유가 더해졌고 긴장은 빠졌으니까.

    아우론조 산장 식당의 아침 풍경

     

     

    변수가 깊게 침투한 죽어야(?) 끝나는 돌로미티 트레킹

    아우론조산장 (Rif. Auronzo, 2,333 m) → 101 트레일→ 라바레도산장 (Rif. Lavaredo, 2344 m)  → 포르첼라 라바레도(Forcella Lavaredo) → Drei Zinnen Blick 101→  로카텔리산장 (Rif. Locatelli, 2,405 m) → Paternkofel→ Via Ferrata De Luca-Innerkofler → 세스토봉 (Sasso di Sesto, 2,539 m) → 105 트레일→ 말가 랑갈름 (Malga Langalm) → 아우론조산장 (Rif. Auronzo), 이것이 우리가 계획했던 트레킹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101 트레일

    트레일 뒤로 보이는 아우론조 산장

      “가볍게 가자. 중간에 산장들이 있으니까 맛있는 거 먹고 천천히 걸으면서 놀다 오자고.”
    배낭도, 마음도 가볍게 산장을 나섰다. 물 하나, 카메라 하나, 모자와 바람막이, 자외선 차단제, 선글래스. 이게 전부다. 아침 08:30분. 산장을 출발하고 1km지점에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을 지나면 트리치메 봉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트리치메를 왼편에 두고 걸으면서 내일 오를 치마 그란데를 뚫어져라 쳐다 본다. 책에서 사진과 개념도를 많이 봤는데도 감이 오지 않는다. 저 멀리 트레치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그나저나 앞서 가는 세 사람은 왜 달리는 건지. 천천히 가자면서요? 

    (위),(아래) 101 트레일, 다양한 트리치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 산맥 돌로미티는 3,000m급 봉우리 18개와 12개의 빙하를 품고 있다. 돌로미티의 대표적인 트레킹 루트는 알타비아 1,2코스가 있는데 각 코스를 다 걸으려면 10일 이상씩 걸린다. 보통 아우론조 산장을 시작으로 하는 트레킹은 101,104,105 트레일을 걷는 루트다. 우리는 라바레도 산장을 뒤로 하고 104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에서 파테르노 산(Monte Paterno)의 안부인 포르첼라 라바레도(Forcella Lavaredo) 고개로 간다. 

    104트레일 갈림길

    포르첼라 라바레도 고개로 간다.

      104트레일 갈림길에는 1차 세계대전 산악전쟁의 상흔들이 많이 보였다. 라바레도 산장은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가지 않았는데 산장 분위기라도 보고 올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 왔다. 레고 조각 만큼 작아진 라바레도 산장과 카디니 디 미주리나(Cadini di Misurina) 산군과 어우러진 구름, 푸른 초원의 백운암과 야생화. 이곳이 바로 돌로미티다 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여기서 멍 때려도 좋은데…)

    구름에 둘러싸인 카디니 디 미주리나 산군과 라바레도 산장

    1차 세계 대전 산악 전쟁의 상흔

      포르첼라 라바레도 (Forcella Lavaredo) 에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가는 101트레일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트리치메 북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제 등반을 했던 치마 그란데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한 번 다녀온 길이라고 한 눈에 알아 본다. 다시 발을 옮겨 로카텔리로 간다. 트레일 끝 오른쪽에 솟은 봉우리, 사소 디 세스토(sasso de sesto)가 보인다. 트레일 우측의 파테르노 산(Monte Paterno,2,744m)은 곳곳에 참호 동굴이 많이 보인다. 파테르노 산은 비아 페라타 루트가 많은 곳이다. 그 말은 산악전쟁이 이곳에서 치열했다는 반증이다.

    Drei Zinnen Blick, 101 트레일

    걸어온 길과 트리치메 북벽

      로카텔리(Rif. Rocatelli, 2,405 m) 산장에 도착했다. 주황색 지붕의 로카텔리 산장 뒤로 보이는 바위산은 세스토 봉 (Sasso de Sesto, 2,539 m)으로 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태리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산악 전쟁에서 이 작은 세스토봉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했다. 그때 만들어진 참호 동굴이 지금은 트리치메를 바라 보며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 명소가 되었다. 다크 속에 스윗 이라니. 

    로카텔리 산장과 세스트 봉

     

      트레치메 (Tre Cime)가 잘 보이는 야외 자리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와 카푸치노, 애플 파이를 주문하고 소풍(?)을 즐겼다. “10년 전에 등반 왔을 때 승빈이(최원일 대장 아들) 가 이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어. 오늘 그 때 승빈이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어.  같이 찍자고. 다음에 올 때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포즈로 찍자..”

     

    (위)(중간)(아래) 트리치메를 감상하기 좋은 자리에서 팀고어 대원들의 힐링 타임

      트리치메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로카텔리 산장은 1882년 대피소였지만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모두 파괴 되었다가 1923년 재건축 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돌로미티 산장 예약은 대체로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로카텔리 산장 예약은 더 치열하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를 오롯이 느끼기에는 로카텔리 산장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저녁으로 황금빛으로 물드는 트리치메를 볼 수 있고 산장 뒤쪽에 있는 피아니호수 (Laghi dei Piani) 산책과 바로 옆 이너 코플러에서 비아 페라타도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의 산장이 바로 로카텔리 산장이다.

    피아니호수 (Laghi dei Piani)

     

    트레킹 리딩은 내가 했어야 했는데…

    “여기 올 때 오른쪽에 있던 산 있지? 거기 가면 바위 안에 터널도 있고 참호 동굴도 있고 비아 페라타 루트도 있어. 거기 갔다가 다시 돌아 와서 트리치메 북벽 보면서 산장으로 돌아가자. “ 로카텔리 산장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파테르노 산(Monte Paterno,2,744m)으로 갔다. 어떤 변수가 들어올지도 모르고 말이지.

    (위) (아래) 뾰족뾰족한 파테르노 산으로 가는 길

      비아 페라타 이너 코플러가 있는 파테르노 산 (Monte Paterno, 2,746 m)은 뾰족한 침봉이 매력적이다. 입구에서부터 산악 전쟁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이 적들의 박격포를 피하기 위해 파놓은 터널과 참호가 즐비하다. 파테르노 산 입구부터 긴 터널이 시작된다. 어떻게 이런 길을 팠을까. 어둡고 긴 터널 곳곳에는 동굴 밖을 볼 수 있는 참호 동굴이 나온다. 당시 알피니의 삶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파테르노 산 터널 입구

      (위) (아래)돌산을 뚫어 만든 터널 (우)곳곳에 보이는 전쟁의 잔흔

    트리치메가 보이는 참호 동굴

    Lastron dei Scarperi 가 보이는 참호 동굴 

      파테르노 산 (Monte Paterno, 2,746 m)은 비아 페라타 길이 많다. 비아 페라타는 이탈리아어로 ‘철로 만든길’이라는 뜻으로 암벽에 설치된 와이어나 철계단 등을 이용해서 바위를 걷는 것을 말한다. 트레킹 보다는 암벽 등반에 더 가까운 액티비티로 장비가 필요하다. 최초의 비아 페라타는 오로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북이탈리아의 군인들은 가파르고 험준한 지형의 돌로미티 산맥에서 군대와 장비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결과 철제 기둥과 사다리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비아 페라타다. 지금은 돌로미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티비티로 자리 잡고 있다. 전쟁의 상흔과 함께 하는 액티비티, 진짜 알피니를 느낄 수 있는 비아 페라타를 오늘은 못했지만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꼭 해보려 한다. 

    100여 년 전 비아 페라타 (출처 : Smithsonian Magazine)

    현재의 비아 페라타 코스

    (위), (아래) 비아 페라타를 즐기는 사람들, 비아 페라타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대장님! 그쪽으로 가면 엄청 돌아서 가야 해요. 저기 사람들 개미만 하잖아요. 보이는 것 보다 거리가 꽤 길어요. 왔던 길로 내려가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가시죠.”
    “아까 동굴 엄청 어두 웠잖아. 다시 내려 가는 것 보다 이쪽이 더 빠를 것 같아. 이쪽으로 가보자고.”
    “아 대장님. 아무래도 그 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걸으면 산 하나를 크게 돌고 엄청 걸어야 할 텐데요…적어도 지금부터 3시간은 더 걸릴거에요.”
    “난 결정하는 대로 따름” “나도”
    “저 산만 넘으면 금방이야. 일단 가보자고.”

    우리 대장님은 일단 가보자 모드만 빼면 다 좋은데…오늘도 레츠고 팀고어다.

    비아 페라타 이너 코플러를 내려오는 김창구 대원

    일단 가보자를 좋아하는 최원일 대장

      로칼텔리 산장(Rifugio A.Locatell) → 파테르노 산(Monte Paterno) →이너 코플러 비아 페라타 (Via Ferrata De Luca-Innerkofler) → 101 트레일 →  Forcella Pian di Cengia → Lago di Cengia → 라바레도산장 (Rif. Lavaredo, 2344 m) →101 트레일→ 아우론조산장 (Rif. Auronzo, 2,333 m), 변수가 깊게 침투한 죽어야(?) 끝나는 트레킹 코스다.

    파란색으로 시작해서 핑크색 길로 돌아왔다.

    (위) (아래) 산허리를 돌고 있는 팀고어 대원들과 유럽 트레커들

      파테르노 산의 동굴을 걸어 비아 페라타 이너 코플러 코스를 따라 내려와 101트레일 에 합류했다. 파테르노 산허리를 돌아 첸지아 고개로 간다. ‘이 길 아닌데…이러면 다 죽는데(?)…우린 물도 없잖아…’ 피 비린내가 났던 전쟁터의 병사는 없지만 병사 못지 않은 전쟁을 치르는 트레커가 여기 있다. 우리는 지금 물도 없고, 행동식도 없고, 뜨거운 햇빛을 피할 나무와 숲도 없는 104번 트레일을 향해 걷는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을 맞이한 기분이다. 

    변수가 깊이 침투한 트레킹 코스

    첸지아 고개(Forcella Pian di Cengia)로 가는 길

    첸지아 고개에 올라서면 트레일 이정표가 있다.

      파테르노산 아래 101트레일은 길고 길었다. 첸지아 고개에 도착하자 최대장님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이 길이 아닌 가봐. 여기 오면 라바레도 산장이 보일 줄 알았어.”  “뭐 어때요. 가다 보면 가겠죠. 경치는 정말 끝내주네요. 나쁘지 않아요. 살아서 돌아가면 되죠 뭐. 하하.“ 햇빛은 뜨겁고 목은 마르고 배도 고프다. 가파른 길을 之자로 걸어 내려가는 switchback길. 올라오는 구간이라면 난코스였겠지만 내려 가는 길이라 천만 다행이다. 다행인건 이 구간에서 보는 풍경은 오늘 트레킹 중 최고다.

    첸지아 고개에서 104 트레일, 라바레도 산장 방향으로 내려 간다.

    첸지아 호수(Lago di Cengia)가 보이는 104 트레일

    switchback 길을 내려가는 팀고어 대원들
     

    (위) 첸지아 호수와 cime passaporto (아래) 104 트레일, 저 멀리 최원일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배고프지? 일단 에너지 젤 먹어. 창구한테 커피 있으니까 커피도 마시고.”
    길고 긴 스위치백 구간을 내려와 첸지아 호수를 지난다. 한 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하염없이 걸어 가고 있는데 저 멀리 최원일 대장이 햇볕 아래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니 에너지 젤을 건넨다.  “창구가 그늘 있는지 찾으러 갔어. 저 멀리 나무 보이니까 일단 가보자고. “ 
    그래. 일단 가보자.

    돌로미티 트레일 이정표

    이정표는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함께 쓰여 있다.

    라바레도 산장 도착

    드디어 베이스 캠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왔다.

      “누가 보면 돌로미티가 아니라 7,000미터급 고산 등반 원정 다녀온 줄 알겠어. 코가 완전 잘 구워 졌어. 요거 꽤 오래갈 것 같은데…그나저나 오늘 힘들었지?고생 했어. 난 진짜 금방 올 줄 알았지. 정말 길 긴 길더라. 이렇게 오래 걸을 줄 몰랐어. 햇볕도 제일 강한 시간이고 말야.”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왔어요. 그래도 너무 아름다운 풍경들을 봐서 좋았어요.”
    “얼른 가서 맥주 한 잔 하자. 갈증 나고 너무 더워 죽겠어..”

      100여 년 전 피 비린내 나는 전쟁터는 야생화가 가득한 평화로운 길이 되었고, 돌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철계단을 놓은 곳은 비아 페라타 코스가 되었으며, 적의 동태를 살피며 숨 죽였던 좁은 동굴은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명소로 남았다. 다크한 장소가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이 멈추지 않은 스윗한 장소가 되었다. 알피니의 아픔이 느껴지는 평화로운 돌로미티 트레킹을 했다. 돌로미티는 한 때 오스트리아 영토였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1918년 이탈리아에 귀속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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